[BK 히어로 03] “작은 선수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성남고의 작은 거인 윤권

[BK 히어로 03] “작은 선수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성남고의 작은 거인 윤권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성남고 외야수 윤권은 현대 야구의 흐름을 정확히 역행한다. 거포의 시대. 파워툴을 중시하는 지명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빠름과 날카로움은 매우 희소한 무기로 평가된다.(사진=베이스볼코리아 고가연 에디터)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영화 ‘야구소녀’의 대사처럼, 야구는 모든 이에게 활짝 열린 스포츠다. 꼭 그리스 신화 속 인물처럼 근육질 몸에 초인적 운동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어도 된다. 키가 아주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비쩍 마른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도, 어린 사람부터 나이 많은 사람까지. 확실한 자기만의 무기만 있다면, 누구나 한 명의 선수로서 야구장에서 제 몫을 할 기회가 있다.


더그아웃 난간 위로 거의 몸이 보이지 않는 선수인 성남고 중견수 윤권도 마찬가지다. 윤권의 프로필상 키는 170cm로 팀 내 최단신이다. 키 190cm 장신인 2학년 김진영, 이채민 같은 선수 옆에 서면 신입생이나 같은 운동장을 쓰는 성남중 학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친구들이 ‘난쟁이’라고 불러요.” 성남고 운동장에서 만난 윤권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른 별명이 없는지 물었더니, 이름 때문에 붙은 ‘나윤권’도 별명이란다. 어느 쪽이든 윤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엔 한없이 부족한 별명이다.

“키만 빼고 다 갖췄다” 공·수·주 만능선수 윤권

“키 하나만 빼고 모든 걸 다 갖춘 선수입니다.”

박혁 성남고 감독의 말이다. “타격도 잘하고, 수비도 정말 잘해요. 발까지 빠릅니다.”

“권이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정말 열심히 해요. 아마 우리 팀에서 제일 근육질일 거에요.” 주장 이재상이 친구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때 사진 촬영을 하던 윤권이 이두근을 강조하는 포즈를 취해 보였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울퉁불퉁한 근육이 모습을 드러낸다. 옛날 만화 ‘뽀빠이’나 마블 영화에 나올 법한 근육질이다.

성남고 외야수 윤권이 숨겨둔 근육을 자랑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베이스볼코리아 고가연 에디터)


박혁 감독은 “키 때문에 권이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감독의 말대로 편견을 버리고 기록만 보면, 이렇게 좋은 선수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올해 6월 5일까지 윤권은 1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3에 9타점과 10도루를 기록했다. 0.483의 높은 출루율로 성남고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외야에선 넓은 수비범위와 빠른 발로 그물망 수비를 펼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약체’로 분류됐던 성남고가 예상을 깨고 황금사자기 8강까지 오른 배경에는 공·수·주를 넘나드는 윤권의 활약이 있었다.

기록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도 있다. 윤권의 남다른 그릿(GRIT, 목표한 바를 열망하고 해내는 열정과 난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끈기)은 기록이나 스피드건, 초시계로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항상 그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죠.” 윤권의 말이다. 선수 대부분이 3~4학년 때 야구부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출발이다. “6학년 7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야구로는 중학교 진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결국 1년을 유급해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꼭 유급까지 해야겠느냐,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자신 있다고 말씀드리고, 정말로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부족한 야구 경험을 노력으로 극복한 윤권 앞에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막 올라왔을 때 제 키가 167cm 정도였습니다.” 윤권의 말이다. “피지컬 좋은 선수들과 비교하면 힘이라든가 장타력 면에서 밀리는 게 사실이었어요. 대신 좀 더 기술적이고 섬세한 야구를 해서 극복하려고 했죠.”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대신, 윤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남들보다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운동에 매진했어요. 몸이 왜소한 편이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만들고 힘을 키우는 데 신경 썼죠. 또 코치님들의 도움을 받아 타격, 수비 훈련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특히 외야 수비는 윤권이 가장 자신이 있는 영역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LG 박해민 선배님이 롤모델이었어요. 박해민 선배님처럼 좋은 외야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연습했습니다.” 윤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선 포수의 위치로 공이 인코스인지 아웃코스인지 보고 타구 방향을 예측합니다. 맞는 순간에는 타구음을 듣고 정타인지, 빗맞은 타구인지 판단해서 낙구 지점으로 스타트하죠.” 고교 외야수 중에 최상위급 타구 판단을 자랑하는 윤권만의 비법이다.

“김지찬, 김성윤 선배 보며 희망 얻어…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수가 되고파”

이제 작은 키는 윤권에게 더는 콤플렉스가 아니다. 그는 “문성주, 김지찬, 김성윤 선배님이나 메이저리그의 호세 알투베를 보며 희망을 얻는다”고 했다. “저처럼 크지 않은 선배님들이 프로에서 잘하시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요. 특히 요즘엔 김성윤 선배님의 영상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선배님들이 제게 희망을 주신 것처럼, 저도 키 작은 선수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끼는 동료, 후배들과 함께 성남고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게 윤권의 목표다.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8강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팀이 좋은 결과를 거둬서 기분이 좋아요. 호수비로 팀을 위기에서 구했을 때, 팀에 도움되는 플레이를 하고 나면 야구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성남고의 작은 거인, 윤권이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다.

배지헌 베이스볼코리아 편집장
jhpae117@baseball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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