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히어로 02] ‘2G 연속 승부치기’ 홀로지킨 신입생 투사, 대전고 에이스 되다.

[BK 히어로 02] ‘2G 연속 승부치기’ 홀로지킨 신입생 투사, 대전고 에이스 되다.

전수은
전수은

[베이스볼코리아]

2022년 대전고는 야구부 창단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제56회 대통령배에서 1994년 이후 28년만의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2023 KBO 신인 드래프트에선 무려 5명의 선수가 프로 지명의 쾌거를 이뤘다. 특히 3학년 우완 송영진과 잠수함 투수송성훈은 팀 내 원-투 펀치로 활약하며 대전고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3학년들이 졸업한 올해는 어떨까. 일부 전문가들은 ‘우승 멤버들이대거 빠져 올 시즌 전력이 지난해만 못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몇몇 스카우트는 “전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대전고엔 확실한 믿을 맨 권일환이 있어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고 호기 좋게 웃었다.

대전고 투수 권일환(사진=장종우 기자)

물 흐르듯 부드러운 투구폼과 정교한 제구력, 타고난 강심장이 장점인 권일환은 송영진(SSG)의 뒤를 이어 2023년대전고 마운드를 책임질 에이스다. 좀처럼 긴장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성격도 에이스를 맡기에 제격이란 평가.

물론 부담감도 크다. 사실 권일환에게 ‘에이스’ 역할은 새롭고 낯선 도전이다. 야구를 시작한 뒤로 줄곧 1인자보다는 2인자, 주연보다는 조연에 머물렀다. 대전 신흥초 시절부터 그랬다. 전국대회를 싹쓸이하다시피 했지만, 1년 선배 김건희(키움)와 주정환(고려대)의 활약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신흥초를 이끈 임동진 세종 인터미들주니어 감독은 “(권)일환이도 야구를 참 잘했지만, 야구 잘하는 1년 선배들의 활약에 가려진 감이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권일환을 지도한 김종국 대전 한밭중 감독도 “폼이 깔끔하고 컨트롤이 좋아서 잠재력은 충분했다. 그러나 당시엔 볼 스피드가 그리 빠르지 않아 평범한 선수로 보는 이가 많았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임동진 세종 인터미들주니어 감독과 리틀야구 시절 권일환(본인 제공)

권일환의 이름 석자가 본격적으로 야구계의 주목을 받은 건 2021년 대전고에 입학하면서부터. 당시 권일환은 신입생답지 않은 제구와 안정감 있는 경기 운영을 선보였다. 여기에 유연한 투구폼은 스카우트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권일환의 신입생 시절을 지켜본 지방권 A구단 스카우트는 “당시 권일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또래 투수들과 비교해 기술적으로 잘 다듬어진 모습이었다. 우아한 투구폼에 구속도 나쁘지 않았고 경기 운영도 잘했다”면서“힘만 좀붙으면선배 송영진만큼이나 좋은 투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 있게 자기 공을 던지는 ‘강철 멘탈’도 돋보였다. 김의수대전고 감독은 “심장이 강한 투수”라면서 “일환이가 아니었다면 2021년 전국체전 준우승도 없었을 거다”라고 칭찬했다.

“당시 8강전에서 군산상고, 4강전 세광고를 상대로 2경기 연속 승부치기를 했어요. 아. 이거 힘들겠구나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데 여유가 넘치는 일환이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때 정말 대단했죠. 일환이가 막판까지 혼자 이닝을 다 막아줘서 결국 결승까지 갔어요. 그 정도 위기상황이면 웬만한투수는덜덜떨고, 숨을 몰아쉬고 할 법한데 일환이는 1학년인데도 표정 변화 조차없더라고요. 그때 ‘긴장안돼?’ 라고물어보니 ‘별느낌 없는데요’하며 너스레를 떠는 게 아니겠어요(웃음). ‘이친구 정말 스타성이어마어마하구나’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좋은 공을 갖고있어도 그런 상황에선 자기공을 못 던지는 선수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일환이는 장래성이 무궁무진한 빅 게임 피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의 말이다. 이에 권일환은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배짱”이라며 “원래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쫄지 않고’ 즐기면서 던지는 게 내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윈터리그에서 자신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인 145km/h를 기록한 권일환(사진=장지형 에디터)

겁 없는루키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학년 시즌인 지난해 권일환은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기록만 보면 13경기 평균자책 2.77로 나쁘지 않았지만, 내용과 과정을 살펴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기대했던 볼 스피드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으면서 장점인 투구 밸런스까지 무너진 것. 그는 “대통령배에서 팀이 우승할 때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하필 대회 전에 심한 장염에 걸려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구속마저 7~8km/h 이상 줄어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경험 덕분에 건강 관리도 실력이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게 웃었다. 위기 속에서도 깨달음을 찾은 그다.

새로운 각오로 맞이한 2023년. 권일환은 다시금 1학년 때의 패기와 씩씩함을 회복했다. 연초 윈터리그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자신의 최고 구속인 145km/h를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평균 구속도 지난해보다 높은 140km/h 초, 중반대에 형성됐다. 권일환은 그 비결로 “지난해 12월에 러닝을 하다 발목을 다친 게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기술 훈련이 불가능해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과 보강 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 하체를 쓰지 않고 앉은 자세에서 공을 던지는 훈련도 했다고. 덕분에 상체 근력과 스태미너가 크게 좋아졌다는 게 권일환의 생각이다.

최근 권일환의 상승세는 선배 송영진의 2022년을 연상케 한다. 특히 구속 상승 폭이 가파르다. 송영진 역시 지난 시즌을 앞두고 패스트볼 구속이 올라오지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이내 150km/h를 넘나드는 빠른 볼을 던지며 KBO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런 평가에 권일환은 “아직 (송)영진 형과는비교조차 안 된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한밭)중학교 때부터 영진이 형은 대단한 투수였어요. 특히 철저한 자기 관리와 겸손한 자세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때부터 형은 제겐 교과서와 같은 투수였죠.”

두 투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김 감독은 “송영진이 커터를 잘 던지는 투수라면 권일환은 종으로 움직이는 슬라이더가 좋다. 볼 스피드는 송영진이 낫지만, 공을 앞으로 끌고 나와서 던지는 능력은 권일환이 낫다”고 평가했다.

대전고 포수 윤현우와 함께(사진=장종우 기자)

권일환과 초등학생 시절부터 호흡을 맞춘 ‘대전고 안방마님’ 포수 윤현우는 “영진이 형이 변화구 승부에 장점이 많다면, 일환이는 낮게 형성되는 빠른 볼이 좋아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렵다”며 “올해 일환이 구위가 워낙 좋아, 지난해 이맘 때 영진이형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권일환 역시 “영진이 형이 이닝이터라면, 전 삼진을 많이 잡는 닥터 K 스타일”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2023년. 이젠 송영진이 없다. 대신 에이스가 돼 대전고 마운드를 이끌어야 한다. 권일환에게 에이스란 자리는 무엇일까.

“에이스는 팀 분위기를 좌우하는 존재잖아요. 더그아웃에 있을 땐 팀의 사기를 올리고, 마운드에 서면 동료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작년에 영진이 형과 선배들이 그랬어요. 위기 땐 팀을 위해 뭐든지 하려고 했습니다. 올핸 제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해요. 그리고 승리할 겁니다. 그게 에이스잖아요(웃음).”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공을 던지고, 팀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더 강한 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 대전의 새 에이스, 권일환의 굳은 포부다.

베이스볼코리아 장종우 기자(press@baseball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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