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집’의 추억

‘초상집’의 추억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LG 트윈스가 5월을 앞두고 위기를 맞았습니다. LG는 4월 마지막 주말 홈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 상대 3연전을 전부 내주고 3위로 4월을 마감했습니다. 결과만이 아니라 내용도 아쉬웠습니다. 28일 경기에선 무더기 주루사와 견제사로 자멸했습니다. 29일 경기에선 LG의 특기인 도루를 6개나(그것도 3중 도루까지) 내주고 졌습니다. 30일에는 믿었던 불펜의 난조와 실책으로 패했습니다.

경기가 마음대로 안 풀리자 선수들도 예민해진 모습입니다. 29일 경기에선 오지환이 배트를 바닥에 내리치고, 크게 고함치는 장면으로 입길에 올랐습니다. 항상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대하는 오지환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LG 선수들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9일 경기가 끝난 뒤 몇몇 선수와 관계자에게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말을 아끼면서도 ‘분위기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솔직히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물론 어느 팀이나 이기면 분위기가 살고, 지면 분위기가 가라앉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겨우 ‘2연패’를 당한 팀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LG는 KT 위즈(9연패)나 한화 이글스(5연패)처럼 연패의 늪에 빠진 것도 아니고, 하위권으로 추락한 팀도 아닙니다. 30일 패배까지 ‘3연패’가 됐지만, 이 정도는 144경기 시즌을 치르다 보면 수없이 나오는 기록입니다. 3연패에도 LG는 여전히 3위이고, 1위 롯데 자이언츠와 승차는 1경기에 불과합니다. 다음 주에 한두 경기만 이겨도 바로 다시 선두로 올라설 수 있는 위치입니다. 그런데도 5연패 중인 꼴찌팀, 9연패 중인 9위 팀보다도 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문득 몇 년 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가 떠오릅니다. 2019년 8월 마지막 주에 SK는 5승 1패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한 주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 베테랑 선수의 발언이 보도돼 논란을 빚었습니다(물론 애초에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이 선수는 팀이 ‘1패’를 당한 경기를 갖고 “분위기가 완전히 초상집이었다”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이는 1경기도 지기 싫다는 승부욕의 표현이었겠지만, 다른 팀 팬들 입장에선 언짢게 받아들일 소지가 있는 실언이었습니다.

결국 ‘초상집’ 발언은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SK는 후반기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정규시즌 마지막 날 두산 베어스에 1위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이 분위기는 포스트시즌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SK는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3위 키움 히어로즈에 스윕을 당하고 맙니다. 한때 2위에 9경기 차까지 앞섰던 80승 선착 팀이 최종 순위 3위로 추락했습니다. SK는 이듬해 초반 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최하위권을 맴돌았고, 결국 염경엽 감독은 시즌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습니다.

염경엽 감독은 LG 사령탑에 취임한 뒤, 여러 인터뷰를 통해 SK 시절의 실패를 통렬하게 반성했습니다. 염 감독은 “내가 너무 우승을 하고 싶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아무리 말로는 ‘편하게 하라’고 해도 선수들이 보는 내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해 쫓기는 분위기가 되는 거, 그게 내가 SK에서 실패했던 이유”라고 겸허하게 말했습니다. 또 “내 딴에는 넥센 시절과 똑같이 한다고 했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거다. 감독이 욕심과 부담감을 드러내니 선수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 리더십의 실패였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점에서 여전히 1위와 1경기 차 선두권이고 겨우 3연패 당했을 뿐인 LG의 다운된 분위기는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사령탑을 향한 비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우려스럽습니다.

시즌 초반 어려움에 처한 LG 트윈스(사진=LG)

야구계에서는 LG 코치진과 선수들이 하루빨리 부담감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방송 해설위원은 “LG 선수단이 지난 몇 년간 성공적으로 해온 야구가 있는데, 올 시즌 갑작스럽게 많은 변화가 생기고 많은 인풋이 주입됐다. 일부 코치들이 힘들어하고 선수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면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투수 파트에서 이뤄진 보직 변경 배경에도 이런 내부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벤치 개입이 많은 야구를 하는 염경엽 감독도 나름의 계산과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도루를 단순히 성공률로만 평가해선 안 된다는 염 감독의 설명도 일리가 있습니다. LG 선수들이 ‘두려움 없이’ 뛰는 데 익숙해지고, 상대가 LG의 발을 의식하게 되면 나중에 큰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특정한 상황에선 벤치 사인이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편하게’ 만들어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일일이 외부에 공개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타 구단 단장은 “다른 팀의 전략이나 팀 컬러에 대해서는 섣불리 뭐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전략적인 이유에서 다 설명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을 거라고 본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문제는 현재까지 LG 경기에서 끊임없는 작전과 도루 시도의 효과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벤치의 야구에는 명과 암이 존재합니다. 상대가 경계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만큼, 아군도 계속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부상 위험성과 체력 저하는 익히 알려진 단점입니다. 도루 실패, 주루사로 아웃카운트를 날리고 공격 흐름이 끊긴다는 팬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LG는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타선(wRC+ 133.1로 1위)을 보유한 팀입니다. 득점권 타율도 0.331로 압도적 1위입니다. 가만두면 5대 0으로 이길 경기가 작전 때문에 한 점 승부가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1군 경기는 누군가의 야구관이 옳다는 걸 증명하거나, 리그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한 곳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결과를 내고 그에 따라 평가받으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전략이나 구상이라도 현실에서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틀 수 있어야 합니다.

LG 트윈스 감독은 힘든 자리입니다. 10개 구단 사령탑 가운데 가장 많은 비난과 비판이 LG 감독에게 쏟아집니다. 게다가 염 감독은 여론 지형상 불리한 조건을 안고 시작하는 입장입니다. 뛰어난 지도자고 장점도 많지만, 그만큼 오해와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도 많습니다. 부정적인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판에 일일이 해명하거나, 말로 다른 말을 낳기보단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거나 여론을 달래는 것도 방법입니다. 결과로 증명하면 여론은 알아서 바뀝니다.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염경엽 감독입니다. 염 감독은 부임 당시 ”이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넥센 때처럼 즐겁게 야구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선수들이 야구장에 나오는 게 즐겁고, 활기차고, 두려움 없이 야구만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첫 번째”라며 “그걸 만들지 못하면 선수들은 또 긴장하고 부담을 갖게 된다.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초심만 잊지 않는다면 LG는 얼마든지 올라갈 힘이 있는 팀입니다. 이제 겨우 개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이고, 26경기를 치렀을 뿐입니다. 앞으로 치러야 할 118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기왕이면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 신나게 야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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