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를 만나다] NC 민동근 "스카우트는 우리 팀 1번 타자"

[스카우트를 만나다] NC 민동근 "스카우트는 우리 팀 1번 타자"

전수은
전수은
'20년차' 아마야구 지도자의 스카우트 변신
"스카우트는 우리 팀 '1번 타자'"
NC 다이노스 민동근 스카우트 인터뷰
NC 다이노스 민동근 스카우트(사진=고고타운)


덕수고 야구부는 오랜 기간 ‘패왕’으로 군림했다. 전국대회 상위 라운드 단골 진출자인 덕수고를 두고 혹자는 ‘기계적인 작전 야구’를 하는 팀이란 평가절하를 하기도 한다. 고교 학생선수들의 자율성을 살리기보단 ‘결과만 좇는 야구’를 추구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하지만,이에 고개를 저은 이가 있다.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로 20년을 보낸 NC 다이노스 민동근 스카우트다.

“그건 덕수고와 아마추어 야구계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덕수고는 아마추어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기’를 신조로 한다.” 동시에 민 스카우트는 ‘야구를 보는 시선의 확장’을 강조하며 “아마추어 시절부터 기본의 숙달과 숙련을 통해 ‘야구 지능(baseball quotient)’이 형성될 수 있다”며 “프로는 그런 BQ가 훌륭한 선수들이 뛰는 곳”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단 이후 줄곧 야구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NC. 그런데도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스카우트 팀의 기본기와 BQ를 강조해온 철학 때문은 아닐까. 지난해 큰 시련을 통해 많은 걸 배운 공룡 군단. NC의 새로운 ‘1번 타자’를 자처한 민 스카우트의 이야길 들어보자.

-“지도자와 스카우트, 내겐 야구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

올해 황금사자기 대회는 조금 힘이 빠진 느낌이다. 강팀들이 빠진 탓일까.

(고갤 저으며) 아니다. 올라올 만한 팀들은 올라왔다. 16강전에서 인상고가 천안북일고를 5회 콜드게임(15-2 승리)으로 이긴 걸 보면 역시 야구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스포츠다. 이변이 있어 재미있고, 또 승패를 몰라서 더 짜릿한 것 아니겠나?

‘명문’ 덕수고등학교에서 오랜 기간 지도자로 활동했다. 덕수의 영광 뒤엔 민동근이란 지도자가 버티고 있었다는 게 아마 야구계의 정설이다.

(손으로 기간을 꼽으며) 정확히 20년이다. 선수 생활이 짧아서 아마추어 지도자 경력이 조금 길다(쑥스럽게 웃으며). 처음엔 모교인 청량중학교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선수를 만났다. 지금 프로에 있는 현역 선수들만 해도 40명이 넘는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이어진 인연은 민병헌(롯데), 김민성(LG) 등이 있고.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가? 엄하게 많이 했는데(웃음). 그라운드에선 ‘무서운 호랑이’가 돼야 하고 내려와선 ‘착한 토끼’가 돼야 하지 않겠나. 채찍과 당근은 항상 같이 가야 한다. 지도자는 선수들과의 교감이 중요한 자리다. 선수가 자연스럽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지도 효과가 높다. 대신 그걸 기다리려면 지도자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게 정말 어렵다.

성공한 지도자가 스카우트로 변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현역 은퇴 이후, 지도자를 시작해서 한시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유니폼을 벗고 이틀 후부터 지도자를 시작했으니(웃음). 지도자 경력은 내게는 큰 무기다. 스카우트란 보직에서도 ‘선수 육성’이란 부분까지 고려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육성?

‘표면적으로 보이는 능력 외에도 야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마추어 지도자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야구를 다각도로 보는 눈’이 생겼다. 단면적으로 선수를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선수가 프로에서 어떤 부분을 수정하면 더 좋은 선수가 되겠다'하는 식의 접근법도 스카우트에 도움이 된다. 덕분에 초보 스카우트치곤 비교적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동시에 반대의 경우도 추천하고 싶다.

어떤 경우인가.

지도자 변신을 계획 중이라면 스카우트를 꼭 한번 해보라고 조언할 것이다. 아마 야구계의 현실이나, 프로 구단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현역 지도자들의 생각, 현장 관계자들의 고민. 프로 구단의 구조를 모두 알면 조금 더 객관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야구계의 현실과 제도적인 한계 등을 모두 고려해 볼 수 있다. 야구계에서 ‘아마추어 파트’는 분명 불리한 상황들이 많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도자와 스카우트. 보직에 따라 선수 보는 눈 역시 달라졌을 것 같다.

기준점이 다르다. 고교 무대에서 지금 잘하는 선수가 있고, 기량은 조금 떨어지지만, 이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가 있다. 고등학생들은 특성상 성장 속도를 가늠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스카우트들이 현재 모습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예측하고 평가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인지, 지금 모습이 완성된 모습인지 판단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지도자 시절보다 스카우트가 되고 나서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다. 이젠 전력이 약한 팀에서도 잘하는 선수, 강팀에서 기회를 받진 못하지만, 잘할 수 있는 선수. 감독들의 성향을 파악해야 하지만, 이제 그런 부분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조금 더 디테일 하게 듣고 싶다. 선수를 볼 때 어떤 점에 주목하나.

흔히 야구지능(BQ)이라고 하지 않나. BQ는 가장 단순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발휘된다. 일단 베이스러닝의 경우를 보자. 내 경우엔 1루 주자로 나온 선수의 ‘눈’을 자세히 본다. 해당 선수의 시야가 어느 정도인지 살피는 것이다. 시야가 좋은 선수들은 눈동자가 쉴 틈이 없다. 투수 혹은 포수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고 살핀다. 시야가 좁은 선수는 절대 포수까지 볼 수 없다. BQ가 떨어진단 이야기다. 그런 디테일을 통해 선수가 앞으로 얼마나 베이스러닝을 잘 할 수있을지,다음 플레이를 얼마나 예측 할 수 있을지를 예상할 수 있다.

-덕수고는 왜 강한가?

지도자 시절엔 덕수고 왕조의 중추로 활약했다. 강팀의 기준은 무엇인가.

덕수고는 체계적인 훈련 방식을 강조한다. 여기다 훈련 시 집중력이 가장 높은 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수비 훈련을 정말 많이 한다. 캐치볼이나 베이스러닝 등 기본적인 훈련에 비중이 높다. 고교야구는 수비와 베이스러닝에서 승패가 갈린다. 타격만 잘해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단 뜻이다. 덕수고 정윤진 감독님은 아마추어 야구계에선 알아주는 명장이다. 일부에선 ‘덕수고에 좋은 선수가 많아서 잘한다'고 한다. 장담할 수 있다. 좋은 선수가 많다고 우승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본기를 강조했던 구시대 야구는 고강도 훈련과 혹사란 문제점을 낳았다. 최근엔 지루한 야구란 비난도 받고 있다.

과거 야구와는 차이가 있다. 덕수고 훈련법은 강도가 높을 순 있지만, 혹사와는 거리가 있다.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지도자들이 체크하고 관리한다. 물론 단면적으론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덕수고 훈련 방식 자체가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몸에 배도록 훈련한다. 그렇다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건 아니다. 이런 훈련들은 선수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라이브만 쳐봐도 확실히 다르단 걸 알 수 있으니. 나도 팀을 떠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웃음). 흔히 '덕수 야구는 창의적이지 않다. 작전 야구만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작전도 기본기가 되고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이 하는 거다.

그렇다면 아마야구 지도자와 스카우트 모두를 경험한 이로서 최근 아마야구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일단 시대가 변했다. 내가 지도자로 있을 땐 모든 게 엄했다. 생활이나 훈련 모두.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워졌다. 아마추어 야구계가 조금은 성숙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 관리란 부분에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여전히 사건, 사고가 잦고. 선수들의 일탈도 빈번하다.이제 그런 것까지 잘 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잘 만들어야 한다.

밑바탕이라면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

프로에 가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시키는 것. 요즘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가 많다. 그런 선수들은 프로에 갔을 때 현실에 부딪힌다. 아마추어 때부터 그런 교육을 잘 받아야 프로뿐만 아니라 한국야구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선수 스스로 그 점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언젠가 다시 지도자가 된다면 이런 부분을 잡아주고 싶다.

그렇다면 지도자들과 야구계가 달라져야 할 부분도 있을 듯싶다.

예전엔 선수가 지도자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따랐는데, 요즘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그 때문에 지도자나감독들이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이 알아오는 데 지도자가 공부를 안하면 요즘 선수들을 따라갈 수 없는 시대다. 선수들도 사고하고 접근하는 방식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일례로 주말리그도 자리 잡았고.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지 않을까.

고교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수준에 대해 이견도 있다.

프로야구 수준이 떨어졌다는 건? 결국 고교야구의 수준이 떨어졌단 의미다. KBO리그만 봐도 그렇다. 근래 투수들의 제구력이 예전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예전보다 프로팀과 선수들이 많아진 점도 있지만, ‘요즘 쓸만한 투수 하나 만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게 프로나 아마추어 야구계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드래프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투수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국제 대회에서의 부진으로도 나타나고 있지 않나.

-드래프트 벼랑 끝에선 NC, 탈출구는?

1차 지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듯싶다.

서울권 학교 지도자로 20년을 보냈다. ‘지역 팜’의 현실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간다. 당장 내 제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불공정한 게임’이란 건 맞다. 다만, 우리 팀(NC)은 신생팀으로서 얻은 혜택도 있다. 당시 8개 구단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그게 결과가 돼서는 안된다. 스포츠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모두가 공정한 룰에서 시작을 해야 한다. 덕수 시절 지도자를 하면서 한 해에 2명씩 1차 지명자를 배출한 적이 있다. 제도만 놓고 보면 늘 아쉽다. 타 구단을 탓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장 좋은 건 꼴찌 팀이 빨리 우승 후보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서도 전력 평준화는 필요하다.

상위 팀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전년도 우승팀은 타 팀보다는 어렵게 스카우트하는 게 맞다. 하위권 팀들도 승률 4할 이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프로야구 전체의 관심도가 올라간다. 또 지역 연고 팀이 잘해야 지역 내의 야구 인구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성적이 나지 않는다면 FA(자유계약선수)도 잡고, 트레이드도 해야 한다. 관심사가 있어야 팬들이 흥미를 갖는다. 소문난 잔치에 손님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러나 현시점은 출발선이 다르다.

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우리팀은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2차 신인 드래프트’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NC는 항상 혁신을 선도해 왔다. NC 스카우트팀도 특별한 구조를 갖고 있던데.

임선남 팀장님이 새롭게 합류하면서 ‘기본적인 지표와 관찰자들의 밸런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선수를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데이터를 결합한 새로운 스카우트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아마야구는 데이터를 크게 신뢰할 수 없지 않나.

통상적인 지표는 객관성이 떨어진다. 다만,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는 선수를 보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수의 제구력이나 삼진율, 해당 주말리그의 수준, 실제 투구 영상 등을 모두 고려해 종합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우리 팀은 매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그 해 키워드를 뽑는다. 올해는 아직 발표를 안 했는데. 작년엔 파워풀(Powerful)이란 키워드를 놓고 선수를 지명했다. 당장 어떤 포지션이 부족해서 그 포지션을 메우기 위해 선수를 뽑는 것이 아니라 추후.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4, 5년 후의 상황을 대비해 분석하고 거기에 맞춤 전략을 내놓는 방식으로 스카우트한다. 사실 드래프트 결과를 놓고 ‘만족’이란 단어는 생각할 수 없지 않겠나? 그런 평가는 성장 결과를 보고 다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해당 인터뷰는 ‘2020 2차 신인 드래프트’ 직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8월 26일 있을 ‘2차 신인 드래프트’다. 올해 지명은 어떻게 보고 있나?

연고지역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평만 할 순 없다. 우리 지역에서도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선수가 바로 1차 지명자 마산 용마고 투수 김태경이었다. 2차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좋은 선수, 우리 팀에 맞는 선수를 뽑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

NC는 전체 1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다. 덕수고 좌완 정구범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

좋은 선수인 건 확실하다.나 또한 중학교 때부터 봐왔던 선수고. 하지만, 후보들이 또 몇 명 있다. 다각도로 면밀히 분석해서 최고의 선수를 뽑을 계획이다.

전체 1번 지명, 부담감은 없나?

어떻게 보면 1차 지명보다 더 고심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지명에 사활을 걸었다. 그 때문에 요즘 문왕식, 김형준 스카우트가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다(웃음). 쉬는 날없이 모두 고생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스카우트는 ‘우리 팀의 1번 타자’다. 1번 타자가 잘해야 출루도 하고 상대를 괴롭힐 수 있지 않나. 스카우트가 부지런히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팀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 그런 면에서 1번 타자와 스카우트는 닮지 않았나.

벌써 결과가 궁금해진다.

올 해 지명된 선수가 팀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절대 아니다. 아까도 강조했지만, 4,5년 뒤 ‘이 선수 정말 잘 뽑았다’란 평가를 받고 싶다. 그게 우리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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